빛으로 쓴 편지
셋, 둘. 그들의 시선과 상관없이 무심히 흐르는 물, 그리고 바라보는 나, 하나.
새싹은 봄에 난다지만, 그래도 그린은 여름, 녹색이 가장 눈부신 계절.
조금 늦더라도, 버겁더라도. 같이 걷자.
날아오르기 전, 다리에 힘을 주고 날개를 가다듬을 시간.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 하는 표정을 보며, 그들의 자유를 빼앗아, 가둬놓고 예뻐해주는 일들이 어찌보면 손을 흔들며 웃고 있는 내가 너무 가식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긴 비의 계절이 끝나고, 꽃과 나비가 다시 노래를 시작했다.
저마다의 얼굴, 저마다의 감정, 저마다의 생각. 그치만 이렇게 내려다보면, 그냥 '군중'. 비오는 날엔 우산을 써야 한다는 것, 언제부터 의심하지 않고 어쩌면 기계적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
이 순간의 그 벅차오름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다시 느끼고 싶은 그때의 기대, 그 설레임.
미나미 모리마치 역, 도코시티 호텔 우메다 건너편. 가정주부, 퇴근 후의 직장인, 혹은 나같은 여행객이 간단한 음식들을 사는 작은 마트. 나에게는 5박6일 여행동안 매일밤의 추억을 만들어줬던, 어떤 곳보다 특별한 장소. 울컥하고 니 생각이 떠오르기도 하고, 다시 가서 마냥 그리워하고 오고도 싶은 나에게만은 참 이상한 마트, KOHYO.
모든 여행의 피로와 한국에서부터 가져온 맘의 무거운 짐까지 모두 모른척 할 수 있었던 고베의 눈부신 야경.
비를 머금어 왠지 더 쓸쓸해진 그림.
너무나도 무덥고 힘든 날이었지만, 머지 않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생각을 하면 나는 주저없이 이 날들을 꼽겠다. 이제 막 저 너머로 고베타워가 보이던 그 날 늦은 오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