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가면 하루에 많게는 열 시간 가까이를 걷기도 하는 '걷는 여행자'라서 해가 지면 꼭 하루가 끝나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만, 여행이 반복될 수록 밤이 반갑고 기다려지게 됐습니다. 해가 진 후 전혀 다른 옷을 갈아입는 도시 풍경에 매료되면서부터였는데, 특히나 도쿄는 밤이 아름다운 도시였습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특유의 감성이 기대와 꼭 들어 맞더군요.
하지만 해가 진 후 사진과 동영상으로 도시를 담는 것은 낮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빛이 부족해 이미지가 흔들리거나 높은 ISO 때문에 노이즈가 많고 색이 탁한 결과물을 얻기 일쑤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밝은 개방 조리개 값을 갖는 단초점 렌즈를 많은 분들이 사용합니다. 저 역시 올림푸스 렌즈 중에서 F1.2 조리개 값을 갖는 PRO 단렌즈 시리즈를 즐겨 사용하고 있습니다. 도쿄 여행때도 야경을 담고자 17mm F1.2 PRO, 25mm F1.2 PRO 렌즈를 함께 챙겼죠.
이윽고 도시에 밤이 깔리면 밝은 단렌즈에 자연스레 손이 갑니다. 광각부터 망원까지 자유롭게 촬영할 수 있는 12-100mm F4 IS PRO 렌즈보다 편의성은 떨어지지만 17mm F1.2 PRO, 25mm F1.2 PRO 렌즈에는 F1.2의 눈부신 조리개 값이 있죠. 2스톱 가량 밝은 조리개 값은 빛이 부족한 야간 및 실내 촬영에서 보다 깨끗하고 선명한 이미지를 안겨 줍니다.
이번 도쿄 여행에서도 두 개의 F1.2 PRO 렌즈가 제 몫을 충분히 했는데, 그 중에서도 신주쿠의 좁고 어두운 골목길 골덴 가이에서 담은 장면들을 첫 번째로 꼽습니다.
이 골목을 꼭 가고 싶었던 이유는 너무나 좋아하는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의 가게와 골목이 이 곳을 참고했다는 이야기 때문이었습니다. 신주쿠 역에서 조금 떨어진 뒷골목은 대로와 사뭇 다른 좁은 골목길, 낡은 건물들, 다닥다닥 붙은 술집과 식당들 속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사람들 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그동안 도쿄에서 보던 골목길 풍경과는 너무나도 다른 분위기였습니다. 좁고 낡고, 어딘가 어지럽고 소란스러운 느낌까지. 그래서 오히려 더 재미있었습니다. 심야식당이 아니더라도 제법 유명한 동네라 외국인 관광객도 많았습니다. 밤이 되면 소규모 술집들이 일제히 불을 밝히고 손님을 유혹하는데, 열 명 넘게 들어갈 수 있는 곳이 드물 정도입니다. 화려한 간판 늘어선 모습과 좁은 실내, 그 안에서 새어 나오는 웃음 소리가 후쿠오카의 야타이 문화를 떠올리게도 했어요.
골덴 가이는 제가 도쿄행을 결정한 후 기대했던 색과 정취를 품고 있었습니다. 비현실처럼 붉고 노란 조명에 역시나 강렬한 색의 간판들. 그래서 몇 개의 좁은 골목으로 이뤄진 골덴 가이 지역을 몇 번이나 빙빙 돌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찍다 보면 아까 그 가게고, 조금 전 그 골목인데도 그 풍경이 너무나 매력적이라 고민 없이 셔터를 눌렀습니다.
실제로는 강렬한 조명 외에는 사람의 실루엣도 알아보기 힘든 가게가 많아서 사진 찍기가 수월하지 않겠다 싶었지만, 17mm F1.2 PRO 렌즈의 최대 개방 조리개 값 F1.2를 설정하고 손떨림 보정 장치까지 적극 활용하니 1/30 초 이상의 여유로운 셔터 속도로도 ISO 감도를 ISO 400 내외로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 촬영에서 손떨림과 노이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수준이죠. 테스트 사진 몇 장을 눌러본 후에는 걱정 없이 마음껏 촬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아래는 신주쿠 골덴 가이에서 촬영한 E-M1X & 17mm F1.2 PRO 렌즈의 결과물을 확대한 것입니다.
어두운 밤거리에서도 ISO 400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F1.2 PRO 렌즈의 대단한 매력입니다. 거기에 E-M1X의 경우 6스톱 이상의 손떨림 보정 효과까지 얻을 수 있으니 웬만한 어둠에서는 촬영에 지장을 받지 않습니다.
다만 조금 더 기동력을 요하는 촬영에서, 셔터 속도를 ISO 1/125 또는 그보다 짧게 설정할 경우 ISO 감도가 높게 설정돼 주의해야 했습니다. ISO 1600 이상에서는 노이즈가 제법 눈에 띄고, 이미지 보정 작업을 거치며 더 심해지거든요. E-M1X를 이용한 야간 촬영에서는 최대한 손떨림 보정 장치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겠습니다.
결과적으로 F1.2 PRO 렌즈의 야간 촬영 능력은 기대 이상이었고, E-M1X의 손떨림 보정 장치는 거기에 날개를 달아준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제가 그동안 사용했던 어떤 카메라보다도 야간 촬영 능력이 뛰어나서, 정적인 장면이라면 셔터 속도를 2초 가까이 설정하고도 핸드 헬드 촬영이 가능했습니다. 올림푸스 카메라를 사용하면서 이미지 센서 개선을 통한 고감도 품질 향상 못지 않게 손떨림 보정 장치와 밝은 조리개 값을 활용하는 것 역시 야간 촬영 능력을 향상시키는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 어둡고, 더 화려한 밤에서 이 카메라와 렌즈가 가슴 뛰는 장면들을 담아줄 것이라 기대합니다. 개인적인 바람이라면 F1.2보다 더 밝은 PRO 렌즈를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F2 내외의 고정 조리개 값을 갖는 줌렌즈도 좋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