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짐 꾸릴 때 가장 중요한 건 카메라 그 다음으로 신발입니다. 하루 열 시간 넘게 걷는 날이 많아서 신발이 정말 중요하거든요. 단기간이라면야 좀 고생 하지 뭐, 하겠지만 최근에 긴 여행들을 다녀 오니 신발의 중요성을 절실하게 느낍니다. 처음 프라하 갈 때 유럽이라고 새로 산 구두 신었던 기억이 나네요.
예전에는 신던 거 신다가 3개월 유럽 여행을 앞두고 뉴발란스 1600을 구매했습니다. 이전에 신던 나이키, 컨버스 운동화보다 발 피로감이 확실히 덜했습니다. 그래서 뉴욕엔 쿠셔닝이 더 좋다는 990v6을 신고 갔어요. 최신 러닝화 기술이 접목된 신발이라 그런지 1600보다 더 좋았습니다. 보통 사나흘 바쁘게 다니면 잘 때 종아리가 당기거나 발바닥, 발등 통증이 생기곤 했는데 이번엔 석 달간 하루, 이틀 정도 피곤함을 느꼈을 뿐입니다. 뉴발란스 신발이 좋기도 하지만 그간 발을 얼마나 혹사 시킨 건지. 그렇게 뉴발란스 마니아가 됐죠.
뉴욕에 996을 신고 갈 계획이었습니다만 990v6가 나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996의 착화감이 좋진 않더라고요.
뉴발란스 신발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자연스레 991 시리즈에 대한 욕심이 생겼습니다. 다른 시리즈보다 날렵한 실루엣이라 캐주얼 뿐 아니라 포멀한 옷차림에도 충분히 매치할 수 있다는 이야기에 혹해서. 1600과 990V6는 여행할 땐 좋았는데 좀 투박한 형태라 평소 옷차림에는 잘 안 어울리더라고요. 그러다 알게 된 것이 991V2입니다. 2023년 출시 된 신상품으로 20여년 전 출시한 991 모델의 업그레이드 버전.
991의 독보적인 스타일을 이어 가면서 현대 러닝화의 기술이 접목 된 것이 991v2의 특징입니다. 특히 990v6를 통해 신뢰감을 갖고 있던 fuelcell 기술이 들어간 것이 반가웠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애용했던 992가 가장 인기가 많다지만 992, 993은 991보다 볼드한 실루엣이라 제 취향엔 991이 맞더라고요. 다만 991의 착화감이 좋지 못하다는 이야기가 많아 구매를 망설였는데 991v2가 이를 개선했다니 답을 찾은 기분이었습니다. 예정 없는 다음 여행 때 신을 신발로.
이 모델의 존재를 미국에서 뒤늦게 접했던 터라 뉴욕 시내에 있는 스토어들을 다니며 실물을 보았습니다. 뉴발란스 스토어에는 재고가 없었고 Kith 매장에 그레이, 네이비 두 모델이 있더군요. 991은 네이비가 최고라는 세간의 평, 뉴발란스의 정신인 그레이 컬러 사이에서 잠시 고민했지만 그 고민이 무색하게도 그레이 모델은 남성 사이즈가 모두 품절이었습니다.
그렇게 뉴욕 여행 선물로 구매한 991v2. 정가가 웬만한 한정판 리셀가에 육박할 정도로 높지만 991에 좀 더 보태면 착화감까지 챙길 수 있다니 한 번 경험해 보자 싶었어요.
그리고 결국 그레이 모델까지. 이건 생일 선물로 받았습니다. 키스에서 봤던 그레이 모델이 귀국하고도 아른 거려서 말이죠. 뉴욕에서 사 온 신발 끈 묶어 보기도 전에 둘을 다 갖게 됐습니다. 같은 모델을 여러 개 구입한 건 컨버스 이후 처음인 것 같아요.
991v2 네이비는 991 네이비와 대동소이합니다. v2 모델의 특징인 미드솔 디자인과 파란색 ABZORB 포인트, 옆면의 991 로고, 혀 부분 V2 자수 정도에 차이가 있고 기본적인 네이비/그레이 배색은 동일해 보여요.
그레이 모델의 색은 웜그레이 쪽에 가깝습니다. 뉴발란스의 수많은 그레이 모델들의 색이 조금씩 다 다르잖아요. 991 그레이 모델만 해도 톤이 조금씩 달라 직접 비교할 수 없고요. 개인적으로는 뉴트럴 그레이보다는 빈티지한 느낌이 있어서 좋아합니다. 미드솔 옥색(?) 디자인은 호불호가 갈리는데, 없는 편이 낫다 생각하지만 크게 디자인을 해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게 착화감을 위한 장치다 생각하면 더욱.
하나는 겨울, 하나는 여름에 생겼지만 둘 다 아직 박스 안에 있습니다. 근데도 또 다른 색이 갖고 싶은 걸 보면 간만에 제 취향에 꼭 맞는 신발을 찾은 건가 싶습니다. 장마철, 무더위 다 지나고 가을 오면 신어야죠. 또 여행 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