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에 다녀 온 1박2일 부산 나들이.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춰 '휴식'만을 목적으로 다녀왔기 때문에 해운대 해수욕장 주변과 숙소를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숙소 뷰가 좋아서 낮에는 소파에 앉아 해 질 때까지 바다를 봤고요.
쉬다만 올 생각이었지만 그래도 먹을 건 신경 써서 골라야지 않습니까. 해운대 해수욕장 근처에서 먹을만한 것, 전부터 먹고 싶었던 것들을 두 곳 골랐는데 둘의 공통점이 있더군요. 최근에 미쉐린 가이드에 선정된 곳이라는 점. 생각보다 해운대 쪽에 미쉐린 레스토랑이 많고 한정식, 일식, 이탈리안 등 장르도 다양했습니다. 연말 여행인만큼 별 받은 곳도 좋지만 만족도는 미쉐린 가이드, 빕구르망 쪽이 늘 좋았던 것 같습니다. 다분히 서민적인 제 입맛에도 맞고 가격도 합리적이니까요.
부다면옥 - 부산에서 평양냉면?
평양냉면 성지들이 주로 수도권에 몰려 있어서인지 부산에서 평냉 먹을 생각은 못 해봤습니다. 해운대 식당들을 검색하다 미쉐린 가이드 선정된 평냉집을 보고 고민 없이 1순위로 꼽은 이유입니다. 해운대 전통 시장, 해운대 구청 근처에 있어 위치도 상당히 좋은데 생각보다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요. 저도 이 길을 꽤 많이 다녔는데 처음 봤습니다. 2층에 있어서 그런가 봐요.
가게 들어서자 마자 직원들이 '밀면은 없습니다.'라고 하는 걸 듣고 역시 부산은 밀면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양냉면에 대한 인지도도 선호도도 아직 부족하단 얘기겠죠. 그만큼 사람들이 많이 묻고 더러는 따지기도 해서 아예 미리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냉면 둘을 주문하니 한 번 더 얘기 하더라고요. 다대기 없이 심심한 냉면이라고.
메뉴는 냉면과 수육입니다. 기본 냉면이 12000원인데 면이 순메밀입니다. 서울에서 순면 평냉을 먹으려면 이보다 1.5배는 받죠. 곱빼기는 17000원. 냉면만을 즐기고 싶다면 냉면 큰걸로 주문하셔도 좋지만 이집은 맛보기 한우 수육이 기가 막히니 냉면+수육 조합을 추천합니다.
전형적인 평양냉면. 별다른 고명 없이 면과 고기, 삶은 달걀을 올렸습니다. 개인적으로 을지/필동면옥의 파와 고춧가루, 봉피양의 채소 절임같은 고명류를 선호하지 않아서 이쪽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육수가 가장 궁금해서 면을 풀기 전에 한 숟갈 떠 마셔봤습니다. 부산 사람들이 즐기는 평양 냉면은 뭐가 달라도 좀 다를까 싶어서.
서울에서 먹던 평냉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이건 칭찬입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평냉 고유의 맑고 담백한, 그러면서 끝맛에 육향과 감칠맛이 도는 매력을 잘 살렸습니다. 서울의 평냉집들과 비교하면 육향은 중간 이상급으로 강한 편에 속합니다. 순메밀면인데도 면에 찰기가 있는 게 의외였는데 메밀 향이 충분히 나고 툭툭 끊어지는 걸 보면 맞는 것 같아요. 게다가 고기를 아주 부드럽게 잘 삶았습니다. 종종 유명한 냉면집에서도 고기가 종이 씹는 것처럼 질기고 별다른 맛이나 향이 없는 경우가 있는데 이집은 고기 단독으로도 맛있습니다.
함께 시킨 수육을 한 점 먹고 눈이 번쩍. 냉면에 올린 고기도 맛있지만 수육은 차원이 다른 식감과 풍미가 있습니다. 아롱사태, 꼬리 등 네 가지 부위가 나오는데 하나 하나가 그간 먹던 수육 중 베스트에 꼽을 정도였어요. 지방이 많은 부위는 입에서 녹을 듯 부드럽고 살코기 부분은 담백하고 촉촉했습니다. 먹다보니 양도 2만원이라는 가격이 아깝지 않을만큼 되고요. 서울에서 방문한 웬만한 평냉집보다 맛있었습니다. 고명에 방해 받지 않고 육수와 면의 맛을 오롯이 느끼는 것을 좋아한다면 이 집 가 볼 가치가 있습니다. 수육은 꼭 시키시고요.
금수복국 - 아 인정하기 싫은데 이번에도 맛있네
간밤에 모듬회에 와인을 마셨더니 자연스럽게 해장 생각이 납니다. 지난번 방문 때 만족했던 나가하마 만게츠의 돈코츠 라멘을 먹고 싶었지만 대기가 기본 서너 시간이더라고요. -그 정도 줄 설 집은 아..아닙니다- 해리단길에서도 가장 핫한 집이 아닐지. 그래서 플랜 B였던 복국집에 갔습니다. 금수, 초원 중 한 번 방문한 적이 있는 금수복국으로. 이집도 미쉐린 가이드에 선정됐대서 간 거 맞습니다. 궁금했어요. 그때 그 감동은 만취 덕분이었는지, 정말로 맛있는지.
매장이 정말정말 큰 데도, 복 메뉴가 만만찮은 가격인데도 점심때 가니 줄을 서야 할 정도로 사람이 많았습니다. 크리스마스에 과음한 사람들이 많았던 거겠죠? 꼭 그게 아니더라도 복국은 부산 사람들에게는 무척 사랑받는 음식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2024년도 어찌저찌 살아남은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로 가장 비싼 까치복을 주문했습니다. 지난번 방문때는 워크숍으로 온 것이라 사실 메뉴판도 못 봤는데 이제 확인하니 복도 종류가 여럿 있더라고요. 까치/밀/은복. 그리고 곤이, 매생이 추가도. 가장 비싼 까치복국의 가격은 26000원이었습니다. 이야.. 고급 음식입니다.
꽤 큰 뚝배기에 한가득 담긴 복국. 대표적인 해장 음식답게 콩나무와 무가 가득합니다. 사실 복어 고기는 몇 점이고 대부분 콩나물이었어요. 사실은 이게 해장의 비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이러니저러니 해도 한 숟갈 국물 마셔보니 목구멍을 따라 뱃속 그리고 온몸으로 따뜻한 기운이 퍼집니다. 가격 대비 늘 의문인 메뉴라 곱지 않은 생각을 깔고 있는데 솔직히 맛은 있어요. 국물이 맛있으니 콩나물도 자꾸 먹게 됩니다. 솔직히 배는 콩나물 그리고 물로 채우는 거죠.
간혹 집히는 복어 고기의 맛은 다른 생선 대비 특별한 것까진 모르겠습니다. 담백하고 부드럽긴 해요. 특히 까치복의 껍질 식감이 특이했는데 돌기 있는 부분이 보기보다도 더 까끌거리고 억세서 입 안이 따갑고 불편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이렇게까지 비싼 돈을 내고 먹어야 할 메뉴인가는 여전히 의문이지만 누가 사 준다면 그리고 부산 오면 한 번쯤 먹을 만하긴 합니다. 아, 고기보다는 곤이가 더 맛있었어요. 크림처럼 부드럽고 고소했습니다.
해운대의 미쉐린 가이드 식당 두 곳. 아무래도 저는 평냉쪽이 더 좋습니다. 밀면뿐인 줄 알았던 부산에서 이정도 평냉을 먹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물론 금수복국도 여전히 그 이름값은 충분히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번에 방문 실패한 나가하마 만게츠도 미쉐린 가이드에 올랐더라고요. 너무 핫한 집이 돼서 앞으로 가기 어려울 것 같지만 아직 안 가 본 분들께는 추천합니다. 평일에는 좀 낫지 않을지.
마무리는 제일 좋아하는 집 중 하나인 고래사 어묵. 어묵볶이 싸고 맛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