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그랜더 헬리어 클래식 50mm F1.5 VM 렌즈에 관한 두 번째 포스팅. 이미지 품질과 표현의 특성에 관해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현행 VM 렌즈들을 통틀어도 개성이 가장 강한 렌즈들 중 하나라 찍기 전 결과물을 예상하는 것부터 결과물 확인, 편집 작업까지 색다른 재미가 있었습니다. 고전적인 표현을 지향하는 이 렌즈는 F1.5 최대 개방 촬영에서 대단히 독특한 결과물을 만들지만 조리개 값에 따라 현행의 깔끔한 느낌까지 함께 맛 볼 수 있었습니다.
보이그랜더 헬리어 클래식 50mm F1.5 VM 렌즈 - 클래식이라는 말의 온기(50 mm/1:1.5 Heliar Classic VM)
F1.5, 이 렌즈만의 표현.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유사한 특성을 갖는 렌즈들이 몇 있겠습니다만 이 렌즈는 2023년 발매 된 보이그랜더의 현행 VM 렌즈입니다. 현대 광학 기술에서 허용하지 않는 개방 촬영의 해상력 저하, 도드라지는 수차를 기획 단계부터 의도한 보기 드문 렌즈고요. 때문에 그에 대한 향수나 동경이 없다면 결과물에 당황하기 마련입니다. 한 달 이상 렌즈를 사용한 저도 라이브 뷰 화면을 보며 종종 초점이 제대로 맞았는지 재차 확인 하니까요. 이 렌즈의 장면 묘사는 크게 둘로 나뉩니다. F1.5 최대 개방 그리고 나머지 조리개 값.
F1.5 최대 개방 촬영 결과물들에서 초점이 맞지 않는 듯 혹은 코팅이 손상된 듯한 뿌연 느낌이 공통적으로 보입니다. 특히 광원 주변으로, 경계면을 따라 도드라지는데 이것이 흡사 올드 렌즈의 결과물처럼 보이죠. 이것이 제조사의 의도일 것입니다. 조리개 값이 F2로 조금만 높아져도 느낌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이 렌즈의 특성을 제대로 느끼려면 의도적으로 최대 개방을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동일한 환경에서 F1.5와 F2.8의 촬영 결과물을 비교한 것입니다. 같은 렌즈임에도 표현이 크게 달라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F1.5 최대 개방에서는 초점이 어긋난 것처럼 경계가 뿌옇게 표현됐고 광원의 번짐, 색수차가 꽤나 눈에 띕니다. 하지만 F2.8로 조리개 값을 조절하면 현행 렌즈 못지 않게 선명하고 깔끔해집니다. 비교적 낮은 조리개 값임에도 빛갈라짐이 선명하게 보이는 것 역시 흥미롭습니다.
두 장의 비교들을 통해 특히 수차에서 F1.5 최대 개방의 특징이 도드라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5라는 숫자에서 얕은 심도만 기대하고 이 렌즈를 선택했다가 후회하기 딱 좋은 비교 결과입니다. 현행 이미지에 익숙해 진 눈으로는 아무래도 거슬리죠. 실체 촬영할 때도 결과물 예측이 어려워서 아예 라이브 뷰 촬영을 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이런 특성이 오히려 빛을 발하는 영역이 있겠죠. 저는 흑백 사진을 촬영해 보면 이 렌즈의 진가를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흑백 촬영에 강점이 있는 F1.5 결과물
빛이 부드럽게 퍼지는 혹은 번지는 듯한 느낌이 흑백 사진에서는 몽환적인 분위기를 더합니다. 많은 사진가들이 동경하는 전설적인 올드 렌즈들의 글로우 표현도 떠올릴 수 있고요. 고대비 흑백 사진에도, 넓은 계조의 부드러운 흑백 사진에도 모두 잘 어울려요. 애초에 현행 렌즈와 다른 방향에서 접근했으니 시선도, 촬영 방식도 그에 맞추면 결과물 역시 만족스럽지 않을까 싶습니다.
앞서 비교했듯 조리개 값을 조금만 높이면 다른 렌즈처럼 샤프해집니다. F5.6-8 구간에서는 함께 사용 중인 컬러 스코파 50mm F2.2와 견줄 수 있을만큼 해상력이 향상됐습니다.
해상력 테스트
조리개 값에 따른 중심부/주변부 해상력을 비교해 봤습니다. 역시나 F1.5 최대 개방 촬영에서 소프트하고 수차도 쉽게 눈에 띕니다. 번지는 듯한 표현 때문에 수차 면적이 더 넓어 보이는 효과가 있고요. 이후 조리개 값에 따라 눈에 띄는 변화들이 차근차근 이뤄집니다. 중심부 해상력은 F2, F2.8, F4로 단계별 향상이 있습니다. F2까지는 소프트 현상이 유지되지만 강도가 줄어들고 F2.8에서 거의 사라집니다. F4에서는 해상력이 크게 좋아져 이후 F11까지 유지됩니다. 주변부 수차와 해상력은 F2.8까지 조리개 값을 높여야 개선 됩니다. 주변부까지 선명한 묘사를 원한다면 F8 내외의 조리개 값을 설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수차는 F11을 포함 모든 조리개 값에서 발생합니다.
50cm 근접 촬영
근접 촬영 성능에서는 현행 렌즈 냄새가 납니다. 최단 촬영 거리가 50cm로 올드 렌즈의 70-100cm보다 분명히 좋습니다. 물론 뷰 파인더 연동에 제약이 있어서 라이브 뷰를 사용해야 하지만요. 최근 출시된 VM 렌즈들의 상당 수가 35-50cm 수준의 근접 촬영이 가능한데, 제게는 이게 꽤 유용해서 새로 렌즈를 구매할 때 중요한 고려 요소가 됐습니다. 이 렌즈 역시 조리개 값을 F2.8로 설정해 주고 근접 촬영을 활용하면 다른 현행 렌즈들 못지 않게 깔끔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어요. 한 렌즈로 다양한 표현이 가능한 것이 무척 큰 장점입니다.
빛망울/빛갈라짐 표현
밝은 조리개 값을 갖는 대구경 렌즈의 특성은 잘 갖추고 있습니다. F1.5 촬영 결과물의 보케는 크기도 모양도 이상적인 것에 가깝고요. 다만 원형 보케는 F1.5 최대 개방에서만 가능한 것으로 보입니다. F2부터 10각형으로 변해 점점 작아집니다. 인물 촬영에서 해상력과 보케 모양을 두고 고민을 좀 해야겠군요.
빛갈라짐 역시 드라마틱한 변화가 있습니다. F1.5 최대 개방 촬영에서는 빛갈림의 형태는 고사하고 광원 주변에 맺힌 색수차가 크게 신경 쓰이는데요, 이를 F2.8로 높이면 10갈래의 빛갈라짐 형태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후 F11까지 점점 더 크고 선명해지고요. 야경 장노출 촬영에서는 F11 내외의 조리개 값을 설정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플레어/고스트
현대 기술의 코팅 역시 배제됐기 때문에 광원에 의한 플레어/고스트 발생도 감수해야 합니다. 이는 촬영 목적과 피사체에 따라 큰 단점이 될 수도 있지만 이 렌즈의 지향점을 고려하면 고전미를 더하는 개성이 될 수도 있겠네요. 동영상 촬영에 적용하면 더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결론은 플레어/고스트를 신경 써야 한다는 것.
사진이라 가능한 표현 또 즐거움
적응하는 데 오래 걸렸습니다. 초점이 제대로 맞은 건지 몇 번을 확인해야 했고 초반 며칠은 찍어 온 사진들 중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었어요. 그만큼 제 눈이 현행 렌즈, 현대 광학 기술에 맞춰져 있었겠죠. 그간 올드 렌즈들의 독특한 표현들을 동경하면서도 제 작업에 적용해 볼 엄두를 내지 못했던 터라 헬리어 클래식 50mm F1.5 VM 렌즈가 좋은 경험이 됐습니다. 모든 장비들이 그렇지만 이 렌즈는 특히 적응하는 기간을 여유있게 둬야겠더라고요. 당황하고 실망하다보니 어느새 이 렌즈 고유의 표현에 적응이 됐고 제 시선도 이 렌즈가 힘을 발휘한 장면들에 맞춰졌습니다. 중간중간 섞인 현행 렌즈들의 쨍한 결과물에 당황할 정도로. 다수를 위한 렌즈는 분명히 아닙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꼭 필요한, 사진 몇 장만으로 그 가치를 납득시킬 수 있는 렌즈라고 생각해요. 때론 모든 면이 완벽한 것보다 단점이 있더라도 대체불가한 매력이 있는 것에 끌리잖아요. 전과 다른 재미를 느끼게 하는 렌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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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업체로부터 원고료를 지급 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