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진을 좋아하십니까?'
아니,
'어떤 장면에 떨림을 느끼시나요?'
한창 사랑에 빠진 이에게 세상 가장 아름다운 피사체는 그 혹은 그녀일 것이고 딸바보 아빠, 아들바보 엄마는 하루 한 장 아이들 사진을 통해 그들의 역사를 기록합니다. 소위 '여행에 미친' 사람들은 제 몸무게의 몇분의 일에 달하는 배낭을 매고 종일 걸어다니는 것이 삶의 낙이고, 인생의 절반쯤을 지나 천천히 내리막을 걷는 이들은 주말마다 산과 바다 혹은 꽃을 담으며 그동안 돌아보지 못했던 것들을 가슴에 채우고 있습니다. 그 모두가 의미있는 일이고, 어느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방에 진열한 피규어와 만화책을 사진으로 담으며 뿌듯해하는 덕후 김씨나, 요리하는 장면을 한 장 한 장 담아 SNS에 업로드하는 살림꾼 최양에게도 사진은 없어서는 안될 존재입니다.
같은 취미를 가진 이에게 어떤 것을 찍는지, 왜 그것들에 감동하고 크고 비싼 카메라를 투자해 기록하는지 물어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저마다 다른 이유와 사연들이 있고, 그 이야기를 듣고 나면 그들의 작업들이 전보다 훨씬 더 근사해 보이거든요.
아, 물론 그전에 제가 어떤 장면들을 좋아하고, 왜 사진을 찍고 있으며 앞으로 어떤 사진들을 찍고 싶은지 먼저 이야기합니다. 저는 거리 위에 '공교롭게' 펼쳐지는 장면들을 좋아합니다.
#Streetphotography
저는 주로 이런 장면들에 감동합니다.
우연한 기회로 사진을 찍고 뒤늦게 여행을 시작하면서 이제 제가 사진을 찍고 여행을 하는 이유는 하나가 되었습니다. 낯선 도시 그리고 수많은 거리 위에 펼쳐지는 우연한 장면들을 보고 또 담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 여행은 도시의 대표적인 랜드마크에서 시작하지 않고, 자랑할만한 인증샷도 없습니다. 배경은 주로 이름모를 골목과 광장, 주제는 햇살과 사람의 실루엣. 거기에 소년의 미소나 강렬한 컬러가 더해지면 더할 나위가 없습니다.
사진을 담는 도구는 순간 저를 감동시킨 장면을 놓치지 않고 남겨줄 수 있는 것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남들처럼 크고 무거운 DSLR 카메라를 사용하다가, 사람들이 카메라를 덜 의식하도록 점차 작은 것을 찾게 됐고, 종일 거리를 걷는 제 체력을 배려해 가급적 가벼운 것을 선호하게 됐습니다. 그러다 한 번은 호기롭게 스마트폰 하나 들고 떠나본 적도 있지만, 그래도 카메라는 하나 있어야겠다는 결론을 얻고 돌아왔습니다. 어쨌든 여전히 작고 가벼운, 동시에 결과물이 괜찮은 카메라를 꾸준히 찾고 있습니다. 디자인도 멋지면 금상첨화고요.
꽤 오랫동안, 올림푸스 PEN-F의 가능성을 테스트하고 있습니다.
이런 제가 '거리 사진용' 카메라로 오랫동안 그 가능성을 테스트하고 있는 카메라가 올림푸스 PEN-F입니다. 2016년 출시한 올림푸스 PEN-F는 얼마전 OM-D E-M1 Mark II가 출시되면서 '올림푸스 최신 카메라'라는 타이틀을 잃었지만 여전히 올림푸스의 전략 카메라이자 고유의 클래식 디자인으로 여전한 매력을 뽐내고 있습니다. 저 역시 DSLR 스타일의 E-M1 Mark II보다는 PEN-F의 클래식 디자인, 그리고 뛰어난 휴대성에 매력을 느껴 여행용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디자인이 멋지고, 렌즈를 포함한 구성이 작고 가벼워서 제 촬영 스타일에 적합합니다. 일 년 가까이 사용하며 몇 번의 여행을 함께했는데, 아쉽게도 이 카메라는 아직 제게 좀 어렵더군요.
하지만 앞서 말한 휴대성과 디자인의 장점 때문에 당장은 성과가 보이지 않아도 꾸준히 함께 여행하며 가능성을 찾고 있습니다. 렌즈는 12mm F2.0과 17mm F1.8 단렌즈 두 개를 사용 중인데, 카메라 못지 않게 이 두 렌즈에 대해서도 호감이 있습니다. 두 렌즈 모두 외형상 PEN-F와 멋진 조화를 이루고 성능 역시 준수합니다. 17mm F1.8 렌즈의 경우 제가 가장 선호하는 35mm 환산 약 35mm의 초점거리를 갖는 점, AF 속도가 빠르고 개방 촬영에서도 괜찮은 품질을 보이는 것이 마음에 들고 12mm F2.0 렌즈의 경우 꽤 넓은 광각 렌즈임에도 왜곡을 잘 잡아 풍경과 스냅 촬영에 고루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좋습니다. 올림푸스 카메라를 포함한 마이크로포서드 시스템은 카메라뿐 아니라 렌즈들 역시 작고 성능 좋은 제품들이 많아 기동성을 살릴 수 있는데, 현재 구성에 망원 렌즈를 하나 추가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어떤 것이 좋을까요? 현재는 작은 크기의 75mm F1.8 단렌즈에 눈독을 들이고 있습니다.
PEN-F와 두 개의 컴팩트 렌즈의 조합은 기존에 사용하던 장비에 비해 매우 작고 동시에 가벼워서 여행이 한결 가벼워지는 느낌입니다. 동시에 거리 사진을 찍을 때 사람들이 카메라를 덜 의식해 더 자연스러운 장면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다음은 아직은 시행착오 중인, 제가 여행과 일상에서 기록한 거리 사진들입니다.
#프라하, #체코, #PEN-F, #M.ZUIKO12mmF2.0
제가 가장 선호하는 초점거리는 35mm지만, 건축물과 거리 풍경이 멋진 체코에서는 12mm F2.0 렌즈로 넓게 담은 거리 사진들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첫 날, 구시가 광장을 좀 더 넓게 담기 위해 렌즈를 17mm에서 12mm로 교체한 후 여행 마지막날까지 12mm를 계속 사용했을 정도로 만족도가 높았습니다. 작은 크기와 무게로 노을빛을 머금은 트램으로 달려갈 때도 숨이 차지 않았고, 프레임 속 사람들의 표정도 다른 카메라보다 좀 더 밝고 자연스러웠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12mm 렌즈 자체는 무척 마음에 들었음에도, 결과물을 보니 35mm 환산 24mm로 촬영하는 거리 사진은 아직 제게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광각 렌즈에서 발생하는 원근감을 제어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넓게 담다보니 주제가 약해졌다는 생각도 들고요. 풍경 사진에서야 17mm보다 월등히 좋았지만, 제가 선호하는 거리 사진을 위해서는 좀 더 연습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타이베이, #대만, #PEN-F, #M.ZUIKO17mmF1.8
PEN-F로 촬영한 타이베이 여행은 아쉬움이 많이 남는 여행이었습니다. 일주일 내내 해를 볼 수 없을만큼 날씨가 좋지 않았고, 비가 계속 내려 방진방적 설계가 적용되지 않은 PEN-F를 사용하는 데 제약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여행에서는 사진보다 PEN-F의 Full HD 동영상을 테스트하고 싶은 마음에 촬영한 사진이 많지 않았습니다. 여행 마지막 날 하루 반짝 갠 날씨가 야속하게 느껴질 정도로 타이베이는 매력적인 도시였고, 충분히 담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흑백 사진의 비중이 높은 것은 좋지 않은 날씨 탓이 큽니다. 다만 수확이 있다면 17mm 렌즈가 역시 제 촬영에는 가장 적당한 거리와 시선을 제공해준다는 것. 많지 않지만 PEN-F와 17mm로 촬영한 사진들은 그동안 제가 촬영하던 것과 같아져 그동안 남의 카메라를 사용하던 느낌에서 벗어나 조금은 제 사진과 가까워진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작은 카메라가 장면과 피사체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한다는 것을 스린 야시장과 지우펀 골목에서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지난 여행 사진들을 보며 다음 여행에선 과감히 조금 더 다가가보리라 다짐했습니다.
#서울, #대한민국, #PEN-F, #M.ZUIKO12mmF2.0
요즘은 다음 여행을 준비하고 있고, 간간히 서울의 풍경들을 담으며 카메라와 친해지는 중입니다. 특히 12mm 렌즈를 좀 더 잘 사용해보고자 주로 이 렌즈로 촬영을 하고 있는데, 아직은 주제 표현이나 구도 연출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35mm에 맞춰져 고착화된 그 동안의 시선과 다른 다른 장면들을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하며 꾸역꾸역 가까워지는 중입니다. 언젠가는 제 카메라가 되겠죠.
PEN-F와 컴팩트 단렌즈 조합으로 여행과 거리 사진을 촬영하며 제가 느낀 이 시스템의 장단점은 아래와 같습니다.
#순간포착
작고 가벼운 카메라는 확실히 몸과 걸음을 가볍게 합니다. 때문에 종일 거리를 걷는 날에도 저녁까지 체력을 넉넉하게 남기고, 해질녘의 묘한 분위기가 만드는 낭만적인 장면에 망설임 없이 종종걸음으로 다가갈 수 있게 합니다. 게다가 제법 큰 덩치의 제가 이 카메라와 렌즈를 들면 그 존재감이 이전에 사용하던 카메라보다 확실히 적어서 사람들이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장면 역시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제가 꾸역꾸역 이 카메라를 제 여행용 렌즈로 연마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있는듯 없는듯 거리 장면에 최대한 개입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담아내기 위해. 그런 목적에서 이 카메라와 렌즈는 확실한 장점이 있습니다. 커다란 DSLR 카메라보다 화질이나 AF 성능이 조금 떨어진다 해도, 장면의 가치에서는 더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습니다.
#모노크롬
일전에 정리한 바 있는 PEN-F의 모노크롬 프로파일은 기본적인 이미지 품질에서는 마음에 썩 들지 않고, 흠잡을 것 투성이지만 그 독특한 분위기와 감성이 자꾸 시도해보게 만듭니다. 그래서 모노크롬 프로파일이 적용된 JPG 이미지와 RAW 파일을 동시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전면 다이얼을 통해 쉽게 조작할 수 있는 방법, 그리고 흑백의 톤과 농도 등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인데, 아직도 제 마음에 드는 설정값을 테스트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완성되면 언젠가 이 모노크롬 프로파일로만 기록한 여행을 한 편 남겨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이 모노크롬은 PEN-F의 장점이라기보단 '아직 유효한 가능성'이라고 하겠습니다.
#고감도이미지
아쉬운 점을 꼽자면 역시 작은 카메라가 갖는 한계입니다. 최근 마이크로포서드 카메라는 화소를 2000만 이상으로 끌어 올리고, F1.2의 밝은 조리개 값을 갖는 렌즈를 발매하며 해상력과 이미지 품질의 향상을 이뤘지만 빛이 부족한 환경, 높은 ISO 감도에서 화질 저하의 폭이 여전히 APS-C, 35mm 풀 프레임 포맷에 비해 큰 편입니다. 특히나 순간 포착을 위해 빠른 셔터 속도를 설정하고, 밤 촬영이 많은 제 여행에서 이 단점이 제법 크게 느껴집니다. 위 이미지는 저녁 9시에 ISO 감도 4000으로 촬영된 것으로 현장감은 살아있지만 보정 과정에서 디테일 손상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포맷의 한계가 여전히 존재하지만 지금보다 한 세대정도 이미지 품질이 발전한다면 이같은 환경에서 느끼는 아쉬움이 해소될 것이고, 여행용 카메라로서 제 평가 점수도 크게 높아지겠죠. 개인적으로는 고감도 이미지 품질 향상과 4K 동영상 촬영 기능이 추가된 PEN-F Mark II를 기대하고 있습니다만, 오래 걸릴 것 같습니다.
"글쎄요, 좀 더 굴려 봐야죠?"
현재 느끼고 있는 단점을 보면, 어쩌면 PEN-F는 제 촬영에 어울리지 않는 카메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이 카메라를 여전히 무척 좋아하고 함께 여행하는 것이 즐겁습니다. 그래서 조금 더 테스트하며 친해지려 합니다. 해가 진 후나 비가 올 때는 이 카메라에 대한 믿음이 뚝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프라하의 어느 거리에서 소년이 거리의 밴드를 지휘하는 장면에 이 카메라를 들고 달려가면서 제가 완벽한 외부인으로 이 장면을 가감없이 담아낼 수 있다는 것에 감동한 그것 하나만 기억하면서요. 제가 발견한 이 가능성이 틀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더불어 저와 같은 즐거움을 느끼는 거리 사진가들에게 PEN-F가 좋은 해답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 올림푸스 PEN-F로 촬영한 이미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