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붉은 광장의 겨울 축제
운 좋게도 저의 여행 기간은 러시아의 크리스마스가 포함된 연휴 기간이었습니다. 러시아의 크리스마스는 1월 7일로, 우리가 사용하는 양력인 그레로리력과 다른 율리우스력을 사용하기 때문에 이런 차이가 나는 것인데요, 새해 후 가장 처음 맞는 휴일이 크리스마스인 것도 생각해 보면 나쁘지 않네요. 많은 모스크바 시민들이 1월 1일부터 크리스마스가 포함된 주까지 약 열흘 내지 2주 정도를 쉬며, 도시 곳곳에 크리스마스 마켓과 축제가 계속 이어집니다. 1월 5일 이 곳에 도착한 저는 덕분에 여행기간 내내 이 축제 분위기에 묻어갈(?) 수 있었죠. 다른 계절에 여행했다면 하지 못했을 특별한 경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르바트 거리같은 번화가는 물론이고, 동네마다 딸린 작은 공원에서도 트리 장식과 크리스마스 마켓, 산타 행렬 등을 손쉽게 볼 수 있을 정도로 모스크바 시민들에게 크리스마스마스는 무척 특별해 보입니다. 러시아 정교를 믿는 나라이기도 하고, 휴가 기간이 이렇게 기니 많은 것들을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노는 거 싫어하는 사람 없잖아요-
우리의 크리스마스가 점점 '커플들의 의무 방어일'로 변질되어 가는 것을 생각해보면, 사뭇 다르죠. 이 곳에선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함께 보내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하니까요. 2주 간격으로 두 나라의 상반된 크리스마스 풍경을 겪어보니 그 차이가 크게 느껴집니다.
1월 7일 러시아의 크리스마스에 제가 찾은 곳은 당연하게도(?) 붉은 광장입니다.
사실 이 곳의 겨울 축제는 크리스마스가 시작되기 한참 전인 12월 초부터 시작된다고 합니다. 12월의 시작과 함께 이 붉은 광장에 대형 스케이트장과 크리스마켓이 설치되어 연말 연시, 그리고 크리스마스까지 시민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관광객들의 눈길을 끄는 이 긴 축제가 진행되는데요, 이 날 크리스마스는 그 '절정'이라고 할 수 있죠. 휴일을 맞아 가족단위 방문객이 정말 많이 보였고, 특히나 이 날의 주인공격인 아이들이 이 동화속 나라같은 광장에서 행복해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어른인 저도 이 광경이 황홀한데, 아이들은 어떻겠어요, 마침 이렇게 날씨까지 화창하니 많은 이들의 기억에 남을 크리스마스가 될 것 같습니다.
여느 크리스마스 축제가 그렇듯, 이 붉은 광장의 축제 역시 '놀거리'와 '먹거리'로 채워집니다.
장난감 마을에서 빌려온 것 같은 이 2층짜리 회전 목마가 이 역사적인 '붉은 광장'과 묘하게 잘 어울리네요. 아마 난생 처음 보내는 붉은 광장에서의 크리스마스에 아이들은 무척 즐거워하고, 부모님들이 다 그렇듯 이 곳 부모님들도 아이들이 한 바퀴 돌 때마다 손을 흔들고 사진을 찍으며 크리스마스 축제를 즐기는 모습입니다. 아이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흐뭇해하는 저 뒷모습을 보노라면, '그래 사람 사는 게 다 똑같지 뭐' 하는 생각이 듭니다.
겨울의 붉은 광장은 이 대형 스케이트장이 점령합니다. 처음 이 곳을 찾았을 때 '광장' 분위기를 느끼지 못한 것도 이 스케이트장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었는데요, 남녀노소 불문 많은 시민들이 스케이트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이 곳에서도 역시 '열심히 스케이트 타는 아이들'과 '고마 눈 한 번 마주쳐 주이소'라는 부모님 간의 밀당 아닌 밀당이 눈에 띄었습니다. 요금을 내고 스케이트를 대여하는 방식으로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지만, 어깨에 맨 카메라에 바쁜 오늘 스케쥴을 떠올리며 마음을 접습니다.
게다가 저 날은 영하 30도 가까이 내려간, 이번 겨울 가장 추운 날이었거든요.
아이들은 정말 대단합니다.
넌 뭘 잘못했길래 혼나는거니
긴 겨울 축제를 위한 많은 것들이 이 곳에 마련되어 있지만, 사실 붉은 광장의 크리스마스 풍경을 완성하는 것은 이 곳을 찾은 사람들의 행복한 미소입니다.
모스크바 거리나 상점, 전철에서는 보기 힘든 '미소'가 여기 저기서 폭발하고, 누구나 이 곳에서는 누구에게나 너그러워 보입니다. 아마 오늘 이 곳에서 하는 사랑 고백은 모두 이뤄질 것 처럼요. 머리가 아플 정도로 추운 날씨지만, 뒤집어 쓴 모자 속 얼굴들은 하나 같이 즐거워보이고, 붉은 광장을 지키는 산타며 루돌프, 알 수 없는 크리스마스 캐릭터들과 거리낌 없이 함께 사진을 찍습니다. 아마 이 곳에 오지 않았다면, 러시아 사람들이 이렇게 잘 웃는 사람들인지 몰았을거에요.
크리스마스 마켓 곳곳에는 산타와 루돌프 복장을 한 사람들이 거리를 배회하며 기념사진을 '찍혀 줄'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혼자였던 저는 아쉽게도 사진을 남기지 못했지만, 겨울에 모스크바를 여행하시게 된다면, 또 하나의 즐거운 추억거리가 되겠네요.
놀거리와 더불어 축제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먹거리'와 '살거리'죠. 커다란 스케이트장 왼쪽에는 크리스마스를 맞아 러시아식 야시장(?)이 열렸습니다. 추위를 녹여줄 차부터 간단히 먹을 빵에 직접 고기를 구워 만드는 핫도그, 식사까지 다양한 먹거리가 빼곡히 늘어서 있고, 기념품 상점에는 다양한 크리스마스 장식품들과 러시아의 상징 마뜨료시카 인형이 절찬 판매중입니다. 최근 경제 침체를 겪고 있는 러시아지만 역시 이런 날에는 사람들의 주머니가 열리기 마련인듯, 붉은 광장 크리스마스 마켓에는 이른 오후부터 사람이 가득했습니다. 추운 날씨에도 길에 세운 테이블에서 즐겁게 식사를 하는 모습이며, 러시아인들이 러시아 기념품을 사는 자연스러우면서 어색한 풍경(?)까지, 러시아의 사람사는 맛을 볼 수 있는 곳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디든지 축제를 즐겁고 흥이 나네요, 처음 이 곳을 찾는 저까지 이렇게 즐거워지는 것을 보면 말이죠.
붉은 광장에서 굼으로 이어지는 축제의 열기
붉은 광장 못지 않게, 아니 화려함에선 오히려 앞서는 굼 백화점의 크리스마스 풍경도 모스크바 겨울 여행에서 놓칠 수 없는 볼거리입니다.
굼 백화점 이야기는 다음 포스팅에서 해 보겠습니다.
밤에는 아주 그냥 불을 태워보자, 불크 in 모스크바.
다시 이 곳을 찾은 다음 날, 크리스마스는 지났지만 모스크바의 겨울 축제는 이제 막 불이 붙기 시작했나 봅니다. 낮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화려해진 크리스마스 마켓의 조명들과 낮보다 더 많이 모여든 사람들로 붉은 광장이 가득 찼습니다. 이 곳 사람들은 여기서 살다보니 추위를 타지 않게 된 것일까요? 축제는 밤이 깊어지고 기온이 내려갈수록 더 뜨거워집니다. 축제 분위기도 분위기지만 붉은 광장의 이 야경은 정말 기억 속에 꼭 간직해두고 싶습니다. 정말 동화 속에 있는 기분이에요.
먹고, 놀고, 함께 즐기며 저마다 다양한 방법으로 인생 가장 화려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 날 저녁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눈이 내렸지만, 축제를 즐기는 이들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 모습입니다. 눈이 오면 오는대로 또 즐거운 게 축제라서 그렇겠죠? 그저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이 생소하고 아름다운, 그리고 사치스럽기도 한 이 풍경들을 눈과 카메라에 담는 저도 혼자지만 함께 축제를 즐기는 기분이었습니다. 가게마다 사람들이 줄을 서고, 곳곳에는 함께 사진을 찍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멋진 겨울 밤 풍경을 만들고 있습니다.
-뭐라도 하나 사먹었어야 했나 봐요, 저 탐스러운 소시지를 이제서야 사진을 통해 봅니다-
아까 낮에 보았던 그 트리가 밤이 되니 요염해졌네요 X-D
밤이 깊어지고 사람들이 점점 더 모여들수록 축제는 화려해집니다. 문득 저의 크리스마스가 어땠는가 생각해보면, 함께 보낼 여자친구가 없어 스트레스, 있어도 어딜 가나 북적대는 인파에 밥 한 끼 먹기도 힘든 식당들을 전전해가며 그저 하루 무사히 흘러가기만 바랬던 기억이 나기도 하는데요, 이 날 이 곳에서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방법'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 붉은 광장같은 곳을 찾는 것이 우선이 되겠네요, 새삼 '크리스마스가 이렇게 즐거운 날이구나' 해봅니다.
크지 않은 마켓을 아무리 돌고 돌아도 질리지 않는 풍경들, 무엇보다 사람들이 만드는 풍경에 취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오랜 시간을 머물렀던 기억입니다.
- 심지어 서울에서 온 푸드파이터가 저녁도 걸렀다는 사실-
아쉬움에 이 곳을 떠난 아홉시 즈음에도 축제 분위기는 점점 더 고조되고 있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엔 오늘 축제가 언제쯤 마무리 될까라는 궁금증부터, 이대로 이 축제가 다음 겨울까지 계속되지 않을까라는 엉뚱한 상상을 해 봅니다. 화려했던 이 겨울이 사람들의 추억으로만 남고 스케이트장도, 마켓도 철거되면 정말 서운할 것 같아요. 아마 이 곳 사람들도 저와 같은 심정이겠죠, 춥고 길지만 빨리 다음 겨울이, 축제가 다시 오길 바라면서.
모스크바가 가장 행복해지는 날, 크리스마스.
많은 사람들이 일년 중 가장 행복한 날로 크리스마스를 꼽고, 행복한 추억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 매한가지지만 모스크바 사람들에게 크리스마스는 조금 더 특별해보입니다. 시의 심장부 붉은 광장에 조성된 스케이트장과 크리스마스 마켓, 그리고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이어지는 축제 분위기와 어느 도시의 사람들보다 적극적으로 이 겨울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이 정말 인상적이었거든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2월에는 아마 이미 이 붉은 광장의 2015년 축제는 끝이 나 있겠죠. 다신 겨울에 모스크바를 가지 않겠다고 수십번 다짐했지만, 다음 축제를 생각하면 다시 참여하고 싶어집니다. 그리고 그 땐 저 속에서 함께 사진도 찍고 음식도 먹으면서 그렇게 즐기고 싶네요. :)
[전체 보기] 한겨울 모스크바, 10박 12일의 미친여행
한겨울 모스크바, 10박 12일의 미친여행 - Prologue, 왜 모스크바였을까?
2. 모스크바행 특급 열차, 아에로 익스프레스 (Aero Express)
3. 모스크바 여행의 시작, 예술을 사랑한 거리 아르바트 (Арбат)
4. 모스크바의 모든 감동은 붉은 광장으로부터 - Red Sqaure (КРАСНАЯ ПЛОЩАДЬ)
5. 허기진 여행자를 위한 Shake Shack(쉑섁) 버거 [본격 모스크바 맛집 탐방]
9. 꿈에 그리던 성 바실리 대성당과의 만남 (아직도 난 널 잊지 못해)
10. 러시아 현지 통신사를 사용해보자, Beeline 개통 및 사용기
11. 모스크바의 까만 밤 속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마네쥐 광장
14. 모스크바 시민의 발, 그리고 여행자의 날개. 모스크바 지하철 미뜨로(метро)
15. 러시아의 영혼이 살아 있는 거리, 푸쉬킨스카야 (부제 : 걷다 보면 알게되는 것들)
16. 밤의 도시, 겨울의 모스크바. 그리고 가장 모스크바 다운 풍경
18. Lumiere 갤러리에서 만난 엘비스 프레슬리 (뤼미에르 갤러리, 사진전)
19. 그림 같았던 노보데비치 공원, 폭설 속의 겨울 산책
20. 러시아의 정신을 간직한 노보데비치 수도원 (Новодевичий монастырь)
21. 모스크바 스타벅스에 간 이유 (모스크바 텀블러 구매기)
22. 모스크바를 가로 지르는 모스크바 강, 특별한 너의 의미
23. 모스크바 최대 쇼핑타운 유러피안몰 (Европейский), 폭풍 쇼핑 위험지역!
24. 모스크바 여행 최대의 해프닝, 2000루블에 얽힌 슬픈 이야기 (왜 그는 나에게, 도대체)
25. 모스크바 최대의 휴식 공안 고리키 공원, 가장 아름답지 않은 날의 기억
26. 미친 여행자의 안식처, 숙소 이야기 [모스크바 호텔 & 아파트]
27. 예술 도시 모스크바, '예술가의 집(Central House of Artists)'에서 칸딘스키와 샤갈을 만나다
28. 사진과 예술을 사랑하는 모스크바 사람들, 모스크비치 이야기
29. 모스크바 최고의 대학교 엠게우(МГУ) 캠퍼스를 함께 거닐어 볼까? (Moscow State University)
30. 문화와 여가가 공존하는 러시아 종합 전시 센터 VDNKh (ВДНХ)
31. 미친 여행자가 모스크바에서 사는 법, 모스크바 물가 이야기와 생존 팁 [모스크바 사용법]
32. 러시아 정교회의 상징, 구세주 그리스도 대성당(Храм Христа Спасителя)
33. 러시아 전통 인형 마뜨료시카를 살 수 있는 곳, 모스크바 전통 시장 이즈마일롭스키 (Измайловский)
Epilogue, 미친 여행의 마무리 - 이래서 모스크바여야만 했다 [Last & Best]